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고어 멘델 (문단 편집) == 사후의 재평가 == 그러나 멘델이 사망한 지 16년이 지난 1900년에 기적이 일어났다. [[네덜란드]]의 식물학자 휴고 더 브리스(Hugo de Vries, 1848-1935)가 멘델과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하던 도중 [[도서관]]에 '우연히' 남아 있던 멘델의 논문을 집어 든 것이다. 더 브리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35년 전 멘델이 실험한 논문을 첨부했고, 이를 통해 멘델의 논문이 세상에 [[재평가|다시 알려지게 된다]]. 비슷한 시기에 멘델의 모국인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옆나라 [[독일 제국]]의 과학자 카를 에리히 코렌스(Carl Erich Correns, 1864-1933)는 멘델과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하다 멘델의 논문에 자신이 밝히고자 한 결과가 모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구를 포기하였고,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에리히 폰 체르마크(Erich von Tschermak,1871~1962)도 유전에 대한 실험결과를 발표하며 멘델의 논문을 첨부하기도 했다. 이를 통해 멘델의 이론은 정설로 받아들여졌고, 과학계에서는 1900년을 '''멘델 법칙 재발견의 해'''로 지정하였다. 이후 이 셋은 멘델의 논문을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유사한 실험 결과를 얻었다. 이 셋만 멘델 법칙을 알린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잊힌 인물이 있으니, [[미국인]] 식물 및 농업학자인 윌리엄 재스퍼 스필먼(William Jasper Spillman, 1863-1931)이다. 스필먼도 비슷한 시기에 콩을 재배하며 비슷한 결과를 발견하여 알아보다가 멘델에 대하여 알았다. 하지만 스필먼은 나서길 꺼려 이 셋이 멘델 법칙 재발견으로 유명해졌을 때 그리 알려지지 못했다. 하지만 그렇다고 스필먼이 이름 없이 사라진 인물은 아니었다. [[미국]] 농업학회장이 되었으며 [[미주리 대학교]] 교수 및 미국 농업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미국에서 유명세를 떨쳤다. 이후 1910년에는 멘델의 동상이 세워졌고, 동상이 세워진 광장에는 멘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는 등, 멘델은 죽고 나서야 유전 법칙을 밝혀낸 과학자로 인정받았다. 죽기 전에 "언젠가는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."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. 이 말은 삶의 후반부에 가끔씩 자신이 대화의 화두에 오르면 나지막히 했던 말이지, 자기 과신에서 온 말은 아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